정확히 5년전이다. 첫번째 SaaS를 만들기 시작했고, 만들고 나니 트러블슈팅하느라 2년을 피봤다. 그래도 Mozy보다 빨리 만들었고, 시장규모 제로에서 1500개쯤 고객을 만들었다.
정확히 2년 전이다. 두번째 SaaS는 기사에서처럼 그냥 만들어주고 나왔다. 더 좋은 엔진 찾아서 바꿨다. 걷어낸다고 반협박해서 검수 받아내고 사표 날릴 때 2천개쯤 되었나, 그새 7천개가 되었단다.
그후 2년을 사업은 한발짝 물러서 보면서, 깐깐한 경영진들 스탭으로 숫자놀음이나 하며 살아왔다. 글을 쓰고 싶어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갑갑함처럼, "백업"과 "SaaS"라는 두 단어는 잊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가슴 속 응어리였다.
그런 사정 잘 아는 도기자님이 가끔 저런 기사 낼 때마다 홧병처럼 속이 타들어간다. 내가 해냈는데, 내가 그걸 해냈던 사람인데, 그거 다 버리고 왔는데, 왜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그냥 그런 추억. 그런 답답함. 혹은 막막함.
어쩌다보니 올여름부턴 다 접고 모 계열사 내려와 희한한 SaaS를 만드는 중이다. 세번째 SaaS. 이거 만들고 나면 또 거의 국내 최초가 될 것이다. 응어리 덕분일까. 반은 우울증 환자처럼 살면서도, 막상 붙잡고 있으니 어느새 개발자랑 노닥거리고, 설계하고 테스트하는데 빠져서 여친님께, 어마마마께 소홀히 하며 살고 있다.
다행히도, 이렇게 오랜만에 새롭게 뭔가를 만들고나니, 그것도 십수년간 국내에서 성공한 적 없었던 엔진을 한달만에 뚝딱 만들고 나서 오랜만에 뜨거운 희열감을 느끼고 나니, 이 똘똘한 개발자 선생 못만났으면 지금 나는 어쩌고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보면, 그 옛날에 이룬 업적들 또한 내 능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자꾸 뒤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던 중요한 진실이 상기된다.
솔루션 장사만 하다가 웹 세상에 처음 와서 빌링도 이해 못하던 놈이 SaaS 운운하며 몇달, 아니 월 BEP 넘기는데만 1.5년이나 걸릴 정도로 초유의 삽질을 할 동안 묵묵히 기다려준 상사들이 없었다면? 팔아줄테니 자기네 서비스에 붙여보라던, 100번쯤 찾아갔더니 불쌍하다고 계약해주고 전국 200명 영업사원 돌려준 더존의 경영진이 없었다면? 내게 엔지니어의 삶을 살게 해준 트러블 덩어리 미국 엔진을 갖다 버릴, 기가 막힌 대안을 찾아준 정모씨가 없었다면? 그렇다고 나 믿고 엔진 바꿔달고 1500개 클라이언트 죄다 새로 엎어버린 더존의 기백이 없었다면?
아마 하나도 못팔았을 것이다. 그냥 내가 실패했던 수많은 신규사업들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고, KT든 EMC든 Symantec이든 온라인백업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래도, 그것들이 왜 조선 땅에선 장사가 안될 수 밖에 없는지 이유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저 내가 한 것은, 매일 거의 두세시간 밖에 안자면서, 700번 넘는 외근을 나갈 수 있었던 미련함과 체력 뿐이다.
다시금 상기해본다. 그때의 성공 뒤 그림자에는 수많은 실패 경험이 있었지만, 믿고 기다려주는 너그러운 상사, 확실한 Captive를 가진 강력한 영업 파트너, 천재적인 개발자, 그리고 미친듯한 체력이 행운처럼 조합이 되서 이룬 것이다.
그 중에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그 때처럼 체력이라도 갖고 있는가? 무엇보다, 또다시 그 일을 위해 다른 많은 기회과 행복과 의무들을 '포기'할 자신이 있는가?
늘어진 뱃살 속 나의 쌍생은 곧 출생신고를 할 것만 갖고, 올 여름 가슴에 박힌 상처가 너무 깊고,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인데, 평범해지기는 너무 힘들어졌다.
에필로그를 보다가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한여름 토요일 오전의 지하철안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그러나 정말 내용 없는 안내방송으로부터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며. 베란다에 새로 탄생한 십자매 새끼들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그저. 기어코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새롭게 맞이한 상사가 출근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아니 X같은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끌려가듯. 잡혀가듯. 한심한 내게. 그 내 머리에 묵직한 망치질.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취직이든 성공이든 남들 하는 대로 하면, 극소수만 목적을 이룰 뿐이다......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때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불리한 룰이 있다면 유리하게 룰을 바꾸거나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한다. ....... 나만의 룰을 세워서 세상을 헤쳐나갈 거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을 옳은 것이므로!"
이 한참 새파란놈이!
정확히 2년전까지의 나를 이끌어온 생각.
하지만 웬지 비겁하단 생각이 들어서 뛰어든 새로운 세상. 그들의 룰은 절대로 바꿀 수 없었고, 내 몸에는 사리만 늘었다.
저의 역마살 덕분에, 또한, 거의 반조직적이고 판타지 수준에 이르는 저의 Insight에 대한 지독한 컴플렉스 덕분에,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획득되어 작용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지식"이라는 것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모르면서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난 덕분에, 모르면서도 모르지 않는 척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거니와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는 판단이 듭니다.
그것이 거의 일년 내내 포스팅을 거의 안(못)했던 이유이자, 현재 예전의 글들을 임시로 숨겨놓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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