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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 그런지 고객님들 하드디스크가 퍽퍽 나간다. 3년째 주물러온 이 미제 백업 엔진은, 만든 놈이나 들여와 파는 놈이나 배째라마이신을 단체로 복용하신 덕분에, DKNI(독거노인)를 선언한 냉방병 환자 32살 싱글남 '갑'께서는, 일주일 내내 에어콘과 선풍기를 벌갈아 작동시키면서 열대야의 위력에 대한 극한의 생체 실험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낯모르는 고객님을 위해 지방에 홀로 계신 모친께서 수술대에 누우셨데도 못가고 말았으니, 과연 '미련한 갑'으로서의 표본이요, '불효자'의 전형이로다. 아, 을의 길은 험난하고, 갑의 길은 고독하다. 나도 한번 배를 째고 싶구나. 3년 동안 가슴에 꽂은 칼만큼 뱃속에서 사리가 나오지 않을까? 팔아서 매출로 잡을까?

#2.
송파구 ㄱ세무사무소 서버 하드디스크가 날라갔는데, 복원 받을 서버와 네트웍 상태가 안좋아서, 인터널이 SATA인 우리집 데스크탑에서 복원을 돌리는 중이고, 아침에 외장하드 들고 날아갈 예정이다. 복원은 인터널이 IDE인 경우 펜티엄급이라도 로컬에 받든 외장하드에 받든 SATA보다 10배 정도 빠르다. 같은 SATA 중에서는 듀얼코어 CPU라면 2배 정도 빠르다. 파일수가 150만개 넘어가면 메모리가 관건이다. 그런데 오늘 하는건 160만개짜리다. 그래서 펜티엄4/512MB/IDE 장착된, 한국 나이로 4살된 회사 노트북 포기하고 우리집 코어2듀오/2GB/SATA 장착된 우리집 데탑이 고생 중이다. 회사에서 노트북 안바꿔줘서 연초에 사비로 구매한 IDE 노트북으로는 겁나서 못돌리겠다. (반년도 안됬는데 팜레스트의 은박이 벗겨지는 중이다) 지금 붙인 외장하드는 오늘 저녁에 새로 사온 시게이트 IDE인데, SATA로 받는 것과 큰 차이는 없어보인다. (입사할 때 받은 그 IDE 장착된 회사 노트북도 이제 3년이 지나서 인터넷도 힘겨워하는데, 회사에서 구매 모델 정한다고 몇달 기다리라더니, 이제는 모회사를 통해서 구매해야 한다고 더 기다리란다. 비용절감 VS. 생산성의 게임에서 우리 회사에서는 영원히 생산성의 완패다. 뭐 새로 받아봐야 SATA겠지만)

#3.
아직은 미제 엔진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이놈을 교체아웃하기 위한 1단계 준비를 끝냈다. 이제 새로운 엔진을 통해 기존 고객은 모두 커버할 수 있고, 앞으로 새로운 고객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완성시켜가면 된다. 잠시 숨 돌리면서 생각 중이다. 기존 고객에게 해답을 제공했고, 게다가 올해 매출 목표를 다 확정시켜놓은 현재 시점이, 내가 이 고독한 사업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희한하게도 2주 동안 잡오퍼가 6개나 들어왔는데, 거절해야할 이유는 10개가 넘는다.

#4.
이 미제 변형프레온 쳐먹고 가슴에 칼 꽃으며 처절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모든 벤더는, 엔드유저의 행복은 물론, 파트너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플랫폼 사업자라면, 그 어떤 공급자보다도 기술적, 사업적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니 항구적으로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 자체 기술 없이 플랫폼 사업자가 되려는 시도가 과연 옳은 길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어짜피 완벽한 엔진은 없다. 완벽해지려는 자존심과 애티튜드가 중요하다. 그러니, 그렇지 않았을 때 언제든지 짤라낼 능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전략 공부, 기술 공부, 재무 공부, 법률 공부, 그리고 관상 공부.

#5.
능력이 안되면 끝까지 최선이라도 다 하는 것이 을의 도리이다. 돈받아놓고 못한다 그러면 안된다. 제품으로 안되면 몸으로라도 해야 한다. 그것도 안되면 환불이 아니라 무릎 꿇고 옷이라도 벗어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려면,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기 싫으면,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을 못지키면 을은 죽어야 한다. 약속을 어겨놓고도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면, 그 을은 을이 아니라 양아치다. 까보면 정말 양아치다운 짓만 하고 있다. 강동구 강력계 철중이형이 말했다. 양아치는 양아치의 세계에서 살아라. 절대 을의 세계로 넘어오지 말라. 형이 시간이 없거든? 얼른 꺼져라. 자꾸 그러면 형이 팬다.

#6. 
그런데 양아치도 급수가 높으면 변형프레온처럼 잘 죽지도 않는다. 나같이 미련한 갑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래도 미제라고 덥썩 젓가락 깔짝 대는 하워드 주니어 후보들이 좀 계신가보다. 주둥이에 쳐넣기 전에,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가 그 미제 한국에서 제일 많이 먹어본 놈이거든요? 레퍼런스 체크도 안하는 당신들의 인생관이 궁금합니다. 손가락이 삐었습니까? 혹시 머리에 이미 구멍이?

#7.
3일 연속 날새고 아침에 전화 받다가 광화문에 날라가서 점심 먹고, 을지로에 뛰어가서 친구 얼굴 잠깐 보고, 자켓 속 긴팔셔츠에 넥타이 조아매고 당산역 앞 횡단보도에 서서 땀 묻은 손으로 담배를 털다가, 4년을 만났던, 5년전에 헤어졌던, 2년전에 시집간, 몇달전 애엄마가 된 옛날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그녀가 주로 나한테 의지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녀에게 참 많이 의지했었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기억나는 그녀는, 요즘 같은 나를 발견하면, 내가 굳이 무슨 말 안해도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줬고, 구멍난 가슴 속에 한가득 들어와 채워줬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나만큼 힘들다. 내가 너무 까칠하게 살았나? 지난주 본부 워크샵에 갔더니, 아무도 안놀아주더라. (사촌동생마저 고스톱판에서 이 형을 거부하더라) 덕분에 모기에 얼굴 뜯기면서 일찍 잤다. 우간독(우아하고 간지나는 DKNI)으로 곱게 늙을려면, 격하게 모질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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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03:23 2008/07/11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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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N3 2008/08/02 20:46

    블로그에 우연찮게 들어왔습니다. 말하자면, 훑어보기 눈팅인데, 참 재밌는 말쌈에 댓거리 달고 싶군요. 저는 주로 을로 일하는데, 갑도 그런 고통이 있구나 생각하며, 갑의 심리를 읽고 갑니다. 자유롭고 책임감이 넘치는 글 같아 자주 들리게 될것 같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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